나도 그랬습니다.


처음 인터넷의 고양이 카페에 들어가서 입양 조건을 읽었을 때, 
이건 뭐지? 뭐 이렇게 까탈스러워? 라고 생각했지요.
고양이를 키우기 5년 전의 일입니다.


그 조건들이란 대개 이런 식입니다.


· 미성년자, 군미필자, 결혼예정자 안됨
· 유아가 있는 집은 고려
· 결혼, 임신, 출산, 이사, 이민, 유학 등 예측가능한 상황 변화를 이유로
파양이나 재입양 금지
· 가족의 동의를 받을 것. 고양이 알러지가 있으면 안됨
· 정기적으로 고양이의 안부를 전할 것
· 부득이한 사정으로 파양 시 원 주인에게 연락할 것



이 정도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입양의 조건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중성화 필수, 고양이가 살게 될 집 방문 등의 추가 조건들이 붙기도 합니다.
고양이 한 마리 데려오는데 뭐 이래라저래라냐 싶어지는 것이죠.
알아서 잘 키울 것이고, 사정이 생겨 못 키우게 되면 또 어련히 알아서 좋은 주인 찾아줄텐데 
무슨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고 사람을 이리저리 재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설득하려거나 이해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단지 자기 고양이에 대한 애틋한 사랑 때문만은 아님을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희 고양이의 입양 조건은 저 위에 항목에서 빠진 것들도 있고
추가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기분 나쁘거나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 아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마음으로 입양을 고민하는 분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이해합니다. 
그런 분들은 샵이나 셀펫에서 고양이를 사오시면* 됩니다.
(*고양이를 '구매한다'는 개념의 무지함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셀펫에도 가정분양을 많이 합니다.
들어가보면 저희집 고양이보다 예쁜 고양이 천지입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면 각자의 조건에 맞는 입양을 하면 되는 것이지
저에게 화를 내며 흥분할 일이 아닙니다.


입양희망자 분들이 기분 상할 것을 우려해서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아이들을 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로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양조건을 숙지시키고
확인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살림집을 공개하며 방문을 권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먼 곳까지 찾아와주신 손님들께 차 한 잔을 대접하고
고양이를 보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고양이를 키우기까지 저는 수 년을 고민했습니다.
거주지를 자주 옮기고, 여행이 잦고, 일거리가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나아졌을 때에도 선뜻 입양하기가 힘들었고
탁묘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고양이를 돌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미리 경험해보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또한 함께 사는 사람에게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고양이를 직접 접해보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마저도 접촉시간이 너무 짧으면 
증상이 잘 안 나타나기도 합니다.
고양이 모래 때문에 집안이 지저분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곳곳에 박힌 고양이 털은 세탁을 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발정기가 되면 견디기 힘든 비명을 지르거나 곳곳에 오줌을 쌉니다.
오줌 냄새 또한 세탁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결국 가구나 비싼 이불을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이런 것들을 잘 넘기더라도 결혼이나 출산을 하게 되면 집안 어른들의 걱정에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재분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뻔히 예상되는 신변의 변화를 이유로 파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위의 조건들이 붙는 것입니다.


네.
동물을 집안에 들이는 건 큰일입니다.
그리고 버리는 건 더더욱 큰일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감수하고, 해결방법을 찾아가며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좋은 점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그 좋은 점들을 누리기에 앞서 불편한 것들을
충분히 알리고 생각할 여지를 드리는 것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구구절절 늘어놓은 입양조건들은 사실 이 한 마디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돌봐주세요."


이 간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된 이런저런 조건들을 나열하는 것입니다.
그게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좋은 묘연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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