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는 싱크대에서 이루어졌다.
한달 전 쯤 발을 씻기려다 손을 물려 피가 나고 삼일간 욱씬거린 경험이 있는지라 매우 조심스러웠다.
일단 아이가 너무 팔팔할 때(이를테면 우다다 할 시간)는 피하는 것이 좋다.
몽롱이가 까박까박 졸고 있을 때 발바닥을 조물락 거리다가 느낌이 왔다.
'지금이닷.'
커다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다리가 잠길 정도만) 싱크대 안에 두고
실눈을 뜬 채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몽롱이를 슬쩍 안아 올렸다.
뜨끈한 물 속에 네 다리가 닿는 순간 고개를 들어 '이게 지금 머하는 거심?'이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조금은 반항하고 싶어했지만 지난번처럼 GR하기엔 물이 너무 따뜻했고 졸린 것 같았다.
그래서 물을 등쪽으로 슬슬 뿌려 순식간에 온몸을 적셔버렸다.
의외로 가만히 있었다.
샴푸를 뿌리고 몸에 비누칠을 하고 발도 닦고 꼬리도 닦고 턱밑도 닦고 배도 닦고...
샤워기(싱크대 수도에 샤워기가 달려 있다 히히)를 쭉 뽑아 몸에 뿌리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물론 간간히 밖으로 나오려는 제스츄어를 취하긴 했으나 격렬하지 않았다.
턱밑에 샤워기를 갖다 대도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조금 즐기는 느낌이었다(고 믿고 싶었다).
책에서 본 대로 귀를 앞으로 접어 고개를 숙이게 한 뒤 머리도 헹구었다.
그렇게 너무나도 순조롭게 끝난 대망의 목욕시간.

"싫어싫어"


수분 흡수력이 강력한 스포츠타올과 일반 마른 수건으로 말려준 뒤
스스로 그루밍하도록 따뜻한 창가에 놔주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어서 털은 금세 말랐다.

"축축해 축축해"


고양이가 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 -

1. 헤엄을 치지 못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
2.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물이 마르면서 온도를 빼앗기는 게 싫은 것. 

..이라는 건 책에서 본 것이고,
어떤 이유에서건 고양이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물의 촉감,
몸이 젖는 느낌 자체가 완전 싫은 것 같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가 고양이와 한 대화 중에
'내 몸이 완전히 젖는 게 너무 싫어요'라고 한 부분이 있다.

'몸이 젖는 게 싫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구체적으로 상상해봤다. 

그건 아마도... 털옷을 입고 물에 빠지는 느낌?
 털이 몸에 축축하게 달라붙고, 몸이 무거워지고, 게다가 춥기까지 하다면...
으... 정말 싫을 것 같다.
아니면, 온 몸에 설탕물이나 꿀을 끼얹는 것과 비슷한 느낌?
으아... 그건 더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롱이는 정말 얌전하게 목욕을 했다.
몽롱이는 이제 목욕 잘 하는 고양이로 거듭난 것이다!

다음 번엔 욕조 안으로 ㄱ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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