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24 - [고양이 도서관] - 방묘창 만들기
 







지난 9월 3일 쯤으로 추정된다. 그 즈음 석봉이와 몽롱이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물론 몽롱이의 발정은 여러차례 왔다 갔지만 몽롱이의 야릇한 자세를 매번
다양한 레슬링 기술로 받아 넘기곤 했던 석봉이의 반응이 이번엔 좀 달랐다.



"우리 사귀어요"



그 후 한달 쯤 되었을 때 몽롱이의 배가 불러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임신을 단정지을 수가 없었다.
석봉이의 배도 같이 불러왔기 때문이다.
몽롱이의 임신 징후는 신체적 변화보다 행동 변화에서 더 뚜렷하게 보였다.
점점 식빵을 굽지 않게 되고, 다리를 쭉 뻗거나 아예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일이 많았다.


임신 5주차



임신 7주차




임신 8주차




분만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11월 1일부터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일찌감치 집안 곳곳에 분만 상자를 세 개 만들어 배치해두었고, 분만키트를 준비해두었다.


* 몽롱 분만 키트 : 가위, 빨간약, 라이터, 유기농 아기면수건 5장, 색깔고무줄 한통, 비닐 장갑



하지만 곳곳에 배치된 분만 상자에는 늘 석봉이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분만 전날 밤, 몽롱이는 내게 다가와 조용히 "아기가 나올 거 같아"라고 말하며
나를 분만 상자로 데려갔다. 하지만 몇 분도 안되서 다시 나와버렸다.
그렇게 밤새 몇 번이나 나를 헷갈리게 만들더니 아침이 되었고, 마지막엔
석봉이와 함께 분만 상자에 들어가 앉아서 석봉이를 그루밍 해주는 걸 보고
나는 잠깐 눈을 붙이러 방에 들어갔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거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냐아아아아아앙 ^($*@)(!!! ~!!!


나는 후다닥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몽롱이는 거실 한 가운데 서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분만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상자 바닥에 양수가 터진 듯한 흔적이 보였다.
다시 몽롱이를 바라보았다. 몽롱이의 엉덩이 부근에 아주아주 작은 다리 두개가 달랑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머리가 나와야 하는데 왜 다리부터 나오고 있는 거지?!!


아이가 거꾸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나는 몽롱이와 함께 비명을 지르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인터넷을 수없이 뒤져 읽은 분만 시 행동강령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분만 키트를 꺼내 온통 헤집어 놓고 뭐가 어딨는지 찾을 수 없게 만드는 둥
나는 혼자 패닉쇼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병원에 데려가야 겠다는 생각에
이동가방 안에 넣으려 했지만 비명을 지르며 이빨을 드러내는 고양이를
좁은 가방 안에 집어넣을 방법은 없었다.
일단 조금 진정한 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더니,
5분만 더 지켜보고 안 나오면 뛰어오라고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결어서 7분 거리)


그러는 사이에 몽롱이는 혼자 분만 상자로 뛰어 들어가 힘을 주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몽롱이에게 다가가 살펴보니 아기는 앞발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당황하면 몽롱이도 당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비닐 장갑을 끼고 아기의 몸통을 잡고 살살 잡아 당기는 시늉을 했지만
얼만큼 힘을 주어야 하는지 내가 당기고 있긴 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이제 아기는 산도에 머리가 끼어 있었고 몽롱이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더 흐른 뒤 겨우 머리가 빠져 나왔다.


나는 비닐장갑을 낀 손에 아깽이를 들고 면수건으로 얼굴에 덮힌 양막을 살살 벗겨낸 뒤
그루밍하듯이 닦아냈다. 그러자 아기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조금 뒤에 태반이 나왔고 인터넷에서 본 대로 실로 탯줄을 묶고 가위로 잘라낸 뒤
몽롱이에게 보여 주었다. 몽롱이는 연신 아기를 그루밍했다.


이제라도 병원에 데려가야 할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몽롱이는 다시 숨을 헐떡이며
가늘고 높은 비명소리를 냈다. 나는 몽롱이의 배를 쓸어주며 할 수 있어, 낳을 수 있어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이번에도 다리가 먼저 보였다.
하지만 이제 몽롱이가 언제 힘을 주는지가 보였다. 몽롱이가 힘을 주는 타이밍에 맞춰
아기를 아주 살살 당겼다.


입으로는 태어난 아이를 그루밍해주면서 뒤로는 다른 아이를 낳는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안쓰러웠다. 나는 수건 위에 아기들을 따로 올려놓고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그루밍하느라 힘을 빼면 중간에 탈진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몽롱이는 다섯을 더 낳았고, 모두 여섯 마리의 아깽이가 무사히 태어났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로 확인한 것보다 한 마리가 더 나온 것이었다.
그 중 다섯이 다리부터 나왔지만 몽롱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힘을 주었다.


아기들은 쉼없이 삐약거리며 엄마한테 기어가려고 했다.





고양이라기엔 좀 애매한...






이게 쥐가 아니라고?






탈진해서 쓰러진 몽롱이와 달려들어 젖을 먹는 아기들.
엄마의 젖을 먹는다기보다는 엄마를 먹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식탁 밑에 만들어둔 분만 상자. 옆면과 뒷면을 막고 나중에 문짝도 달았다.


문짝 만드는 법은 요기에 ↓

2010/08/24 - [고양이 도서관] - 방묘창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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