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로 어제, 혹은 며칠 전의 일들은 자주 잊어버리면서도
아주 어릴 적, 말을 하기 전부터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기억들은 단편적이지만 꽤 선명하고 디테일하다.


이를테면 내 시점에서 바라보던 거리의 풍경은 어른들의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다든지,
그래서 엄마와 똑같은 색깔의 군청색 치마를 입은 낯선 아줌마를 쫒아갔다든지,
원하는 것이 있는데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순간이라든지...


그리고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고양이의 등을 쓸어내리던 감촉.






이 녀석이 내 생애 첫 고양이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모르겠다.
가족들이 집 안에 동물을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 아마 잠깐 떠맡았다가
또 어디론가 보내졌을 것이다. 녀석의 동그란 등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던 게
고양이에 대한 내 기억의 거의 전부니까. 내가 생각나는 건 집안에 있던 고양이의 존재가
신기했고, 다가가기 힘들었으며, 사라지고 난 뒤 남아 있던 아쉬움 정도이다.


그 이후로 어른이 될 때까지 나는 쭉 고양이가 그리웠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그래서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게 되면
그땐 꼭 고양이를 기르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무려 30여년이 흐른 뒤에야 나는 원하던대로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엄마의 허락 없이 물건을 사고, 옷을 고르고, 밥을 먹다 남겨도 되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새로 생긴 여섯 마리의 아깽이들과 출산 후 급 늙어버린 몽롱이,
여전히 정신연령이 낮은 석봉이를 위해 대용량의 사료와 모래를 주문하며
허락만 받으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어린 날, 내 첫 고양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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