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양이 뿐 아니라 새를 제외한 모든 털짐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양이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어른들 중 한 분이다.
그러니 우리집에 들어앉아 있는 고양이 여덟 마리와 맞닥뜨리게 된 것은 엄마에게
대참사였을 것이다. 그나마 여섯 마리는 아직 꼬물이기에 망정이지.
하지만 엄마는 2년 만에 만난 딸네미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석봉이가 밥상 옆으로 꼬리를 휘감으며 지나갈 때에도
털을 휘날리며 전기 밥솥 위로 뛰어올라 식빵을 구울 때에도
엄마는 "아이구, 안 다니는 데가 없네!"라며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엄마가 사는 곳은 뉴질랜드의 시골 마을이다.
비슷비슷한 구조의 작은 집들에 나이 드신 분들이 혼자 사는 일종의 실버촌이다.
몇몇 집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모두 외출냥이인 듯 하다.
어느 날은 정원에 앉아 있는데 느닷없이 엄마네 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나오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란 엄마는 너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고양이는 개의치 않았다.
그 뒤로도 녀석은 종종 열려 있는 뒷문을 통해 엄마네 집으로 들어왔다가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나가거나, 때로는 현관 앞에 몇 시간쯤 앉아 있곤 했다고 한다.


한번은 우편함에 광고전단지와 함께 고양이 사료가 들어 있었다.
엄마에겐 필요도 없는 사료를 어떻게 하나 생각하던 차에 마침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고양이 앞에 사료를 놓아주었다. 그렇게 두세번쯤 밥을 주었더니 녀석은 이제 엄마네
집 앞에 와서 사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광고사료는 이제 다 떨어졌고, 난감했던 엄마는 마트에서 사료를 사다가 밥을 주게 되었다.
이웃집 고양이의 캣맘이 되고 만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엄마가 정말 고양이를 싫어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자꾸 찾아와서 밥 달라는데 어떡해. 서 있으면 와서 꼬리로 다리를 이렇게 휘감는데 그러면
'아악. 나는 너 싫어. 저리가.' 이러면서 밥만 주고 도망와. 옷에 털 다 묻고 어휴... ."


그러면서 엄마는 은근슬쩍 석봉이를 다른 데 줘버리라고, 새끼들도 다 갖다주고
한 마리만 키우라고 말해보기도 한다. 씨도 안 먹힐 얘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만큼 어쩔 수 없이 고양이가 싫은 것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면서도 굳이 사료를 사다가(게다가 엄마는 굉장히 알뜰하다) 먹이는
아줌마도 희한하지만,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사료에 독을 타서 먹이는
한국의 수많은 아줌마들도 희한하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고양이를 대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엄마가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을 떠올린다.
이웃집 고양이들이 거리를 산책하다가 맘에 드는 집에 슬쩍 들어가보기도 하고
어느 집 현관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기도 하고,
다가가면 도망가면서도 밥을 주는, 고양이보다 더 고양이스러운 아줌마가 살고 있는
노인들의 마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이 아릿했던 그 곳의 풍경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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